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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교육이란 무엇인가

엘리트 교육의 허와 실

 - 홍기빈

무엇이 엘리트 교육인가

한국 학생들의 살인적인 수업량은 모두 알고 있는 바다. 고등학생은 물론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아침에 나가 학교와 여러 학원을 전전하다가 깊은 밤이나 돼서야 인생의 고뇌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낯익은 풍경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0교시 수업'도입에 '학원 24시간 수업 허용'등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학교와 학원이 무슨 편의점인가. 학생들은 환한 전등 아래 잠도 못자고 알만 까는 양계장의 닭들인가. 이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은 것도 당연하지만, 나는 모럴리즘보다는 이러한 관습의 효율성에 더욱 관심이 간다. 수업을 많이 들으면 과연 그에 비례해 학생의 머리가 더욱 깨고 똑똑해지는가.

몇 년 전에 스웨덴에 갔을 때 스톡홀름대학의 학생 활동가들과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그 젊은이들은 스웨덴 정치와 경제의 역사, 노동운동과 사회복지 시스템의 논리와 한계점, 그것의 급진적 해결 방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보통 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견해까지 술술 풀어놓았다.
대화 도중에 엉뚱하게도 내 머리에 자꾸 어른거렸던 것은 서울 대치동 길가에 주욱 늘어선 각종 학원이었다. 그곳에서 온종일을 보내는 한국 학생들기껏 오후 3시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같은 나이의 스웨덴 학생들에 비해 일생 동안 교실에 앉아 수업을 받는 시간에 두세 배는 족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생들이 지금 내 눈앞에서 막힘없는 영어로 지식과 생각을 풀어놓는 이 젊은이들에 비해 응당 '두세 배'는 똑똑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자명한 현실은 모르쇠한 채 '경쟁력'이니 '학력 향상'이니 하면서 계속 수업 시간만 늘려서 가엾은 학생들을 아주 잡으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지금 소위 '국제중학교' 소동이 벌어지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모양이다. 이를 추진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에는 지난 십 년간 '좌파 정권'의 잘못된 '평등주의'때문에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전지구적인 경쟁과 효율의 시대에 마땅히 이 땅의 교육도 능력있는 학생들을 추려내어 앞서나가게 해주는 '엘리트 교육'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가뜩이나 살인적인 수업량은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 땅에 '아동'은 사라지고 '수험생'만 그득하게 될 판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말이 있다. '엘리트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한국과 일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여 일본에 진주한 미국 점령군들은 일본제국대학의 교육 수준을 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당시 아직도 학문적으로 영국이나 독일의 대학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던 미국인들로서는 일본제국대학의 시설과 교수와 학생의 수준이 그에 못지않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사립대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게이오 대학 창립자 후쿠자와 유키치 스스로 엄청난 '엘리트'였거니와, 그의 저서'서양문명개략'을 읽게 되면 어떻게 칼 차고 머리 묶고 자라난 사무라이 청년이 서양 문명의 정수를 이토록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일본제국의 장래를 맡을 뜻있는 젊은이를 키울 '의숙'으로 시작한 것이 게이오 대학이니까.

 어째서 그랬을까. 메이지 유신 이래 급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하던 일본의 지배층이 목표로 했던 것은 서양 열강과 견줄 수 있는 독자적인 국가 건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키워내려 했던 '엘리트'는 단순히 말 잘 듣고 시험 잘 보는 학생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 전략이나 국가의 사상적 기초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관점을 가지고서 새로운 문제들과 도전이 왔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그야말로 '실력 있는' 학자와 관료와 기술자들을 키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치안법'이 시퍼렇던 기간에도 제국대학 내에서는 거의 완전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학생들과 교수들은 마르크스나 좌파 사상도 얼마든지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였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어땠을까. 한국의 지배층들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그렇게 '서양 열강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국가의 건설'과 같은 원대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국가라는 틀은 냉전과 미일 관계라는 큰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저 급속한 경제발전과 사회질서 유지 정도가 고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엘리트'라 하는 것도 그렇게 영어 불어 독어를 모두 익히고 찰학과 서양 고전을 독파한 문과생도 아니었고, 자기 힘으로 물리학과 수학의 새로운 혁신을 열어갈 수 있는 독창적인 자연과학도도 아니었다. 그저 영어로 된 각종 매뉴얼(여기에는 기술적 지침서뿐만 아니라 미국 학계에서 '표준화된' 교과서나 학계 정설들을 정리해 놓은 서적도 들어간다)들을 정확히 익히고 그것을 한국에서 틀림없이 재현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면 되고, 그 수가 많아야 한다. 한마디로 '중저가의 엘리트 다수 양성'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엘리트 교육'이란 사실 대학 들어가기 전 중고등학교에서 일본 동경대학 본고사 시험 문제를 가져다 놓고 학생들을 '조져대는'것으로 충분했으며, 대학에서의 엘리트 교육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는 일제 강점기의 '경성제국대학'의 후신이거니와, 학창 시절 도서관에 갈 때마다 경성제대 시절의 장서 목록과 서울대학 시절의 장서 목록이 그 질과 양에서 얼마나 격차가 나는가를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학생의 머리와 생산함수

지금 일본의 엘리트 교육을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라는 시대는 몇몇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이끌어갈 수 있는 그렇게 어수룩한 시대도 아니거니와, 일본의 엘리트 교육이라는 것도 과대평가할 것은 아니었으며 또 전후 미군정의 '교육개혁' 이후로 그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두 종류의 엘리트(독자적인 지적 능력을 갖춘 엘리트와 '중저가 엘리트')는 그 양성 과정이 사뭇 다를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의 머리는 인간이 아는 것들 가운데 가장 미묘하고 예측 불능의 존재이다. 청소년의 머리를 깨우고 지성과 감성를 발달시켜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일은 '영혼의 산파술'이라고까지 불리는 까다롭고 지난한 작업이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지적/감성적 상태를 머리와 가슴으로 깊이 이해해야 하고, 그 속에 숨은 향상과 발전의 가능성을 극대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주의 깊게 찾아야만 한다. 이 정도의 완벽한 교육을 시스템으로 다 구현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창의력과 독창성를 갖춘 독자적 사유 능력을 가진 엘리트를 키워내는 과정은 이러한 원리를 바탕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한 원자재에다 시간만 때려박으면 그게 생산이라는 생각은 댐이나 운하, 빌딩, 공장 등을 세우는 경우에나 적용된다. 무지막지하게 외우고 패고 하는 것만으로 그러한 엘리트의 양성 과정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는 지금 프랑스의 그랑제콜 등에서도 볼 수 있는 바이다.

 그런데 '중저가 엘리트'의 경우는 다르다. 이는 그저 필요한 원자재에다 시간만 때려박으면 생산으로 이어진다는 생각대로 댐이나 운하, 빌딩, 공장을 짓는 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펄벅의 소설 [대지]를 보면 어린 아들을 서당에 보내는 아버지가 훈장님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 나온다.
 "이 아둔한 놈의 머리에 글자를 넣으려면 그저 한없이 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르신, 부디 매를 아끼지 마십시오."
지금 같으면 비웃음을 사거나 자칫하면 호되게 경을 칠 이런 생각이 그 시대에는 지배적인 '교육'의 패러다임이었나보다. 상급자가 일하는 이들을 그저 쥐어 패는 것이 고작이던 농경시대의 생산관계의 지배적 패러다임을 옮겨온 것인 셈이다. 이제 세상이 산업시대로 바뀌었다. 이제 뵘바베르크의 생산이론처럼, 노동(학생의 머리)과 토지(학원과 학교의 교실)라는 기본 요소를 놓고 거기에 '시간'만 무한정 때려박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생산물(학력과 좋은 대학)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이 시대의 지배적인 교육 패러다임이 된 셈이다. 물론 삽질 또는 '공구리'치던 가락을 살려 무작정 학생을 건축 현장 원자재처럼 이리저리 '조져'대는 일이 벌어지면, 원하는 교육은 얻지 못하고 대신 학생들의 머리만 실제로 '공구리'처럼 단단해질 공산이 크다.


돌세대가 돌세대를 낳는 시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제중학교'라는 엘리트 양성 계획이라는게 바로 그 '중저가 엘리트' 양산이라는 한국적 엘리트 교육의 21세기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엘리트'라고 하면서 법석을 떨며 키워내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동량'이라는 것이 사실상 고작 미국 대학 들어갈 수 있고 또 미국 박사 학위 받을 수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는게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의 내용 자체에 어떤 혁신이 있고 학생들의 창의력과 독창성을 키워낼 어떤 계획이 있는가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그저 국어 이외의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 뿐. 그런데 이게 정말로 '엘리트'인가. 이런 사람은 태평양만 넘어가면 일 년에 몇 백만명씩 양산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하버드 예일같은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엘리트인가. 그 또한 일 년에 몇 천 명씩 양산되고 있지 않은가.
이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서 좋은 대우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라면 '엘리트'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국가가 교육 정책의 대계를 결정하는 의미에서의 '엘리트'가 고작 이런 뜻인가. '중저가 엘리트'의 특징은 돈만 주면 얼마든지 시장에서 구해다 쓸 수 있는 '인력'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다. 표준화된 생산 공정으로 일 년에 수천 수만씩 쏟아져 나오는 '노동력'. 이 '인력시장'을 준비하는 과정이 고작 우리의 엘리트 교육이고 이것 때문에 나라 전체가 이렇게 내홍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싶다. 이렇게 그저 '미국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을 하늘같은 '엘리트'로 떠받들고, 또 그런 정도의 교육을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바라고 믿는 것이 현재 이 사회의 '엘리트'들인 듯 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 자신이 지난 시절 이 무지막지한 20세기식 생산함수가 지배하던 60 ~ 70년대를 거치면서 그렇게 머리를 '공구리'로 만든 이들이 아닌가 싶다. '석녀'라는 옛말에서 보듯, 원래 돌은 동서를 막론하고 새끼를 낳지 못하는 것의 대표적인 심상으로 등장하는 존재였다. 이제 2008년 한국에서는 그 반대로 돌세대가 돌세대를 재생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스웨덴이 학문, 사회운동, 문화/예술, 국제정치 등에서 배출한 인물들의 수와 한국이 배출한 인물들의 수를 한 번 생각해 본다. 참고로 스웨덴의 인구는 9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인다. 학부모들 중에는 '국가적 엘리트'고 뭐고 어쨌든 미국 대학에서 성공할 수 있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큰 대접받을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어쨌든 내 자식은 그런 '엘리트'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묻지마' 영어교육과 국제중 열풍(사실 출세욕일 뿐 교육열도 아니다)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정도의 성공 모델도 과연 얼마나 갈까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8년 동안 관찰하면서 본 바, 이 외국 출신의 '중저가 엘리트'들이 현지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문이 대단히 좁다는 것이다. 당장 '7막7장'이니 하버드 대학 수석 졸업이니 하면서 강남 학부모들에게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여겨지던 이도 지금 한국으로 돌아와 고작 서울 강북 어디 지역구의 평범한 국회의원이 되어 있다.
 지금 대학 교육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영어권 대학 졸업자들의 숫자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에도 영어 좀 잘하고 외국 대학 졸업장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이점이 되는 시대가 계속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아마 더욱 현명한 길은, 아이들을 생산함수의 블랙박스로 쳐넣는 대신 창의력과 독창적 사고방식을 갖추도록 키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으로 가면 더욱 절실해지는 이야기일 것이다.

by 커피끊자 | 2008/10/21 00:12 | 양질의 펌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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